어느 작별

2024. 9. 25. 08:47단상(모노로그)

어느 작별

 

어느 날 위쪽의 앞니 하나를 뽑게 되었다. 그런데 입의 정중앙에 자리한 앞니를 뽑는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매우 서운했다. 안면 중앙에 자리 잡아 얼굴의 모양을 잘 잡아주고 안면의 균형을 잡아주던 앞니를 뺀다고 하니 영 서운한 게 아니었다. 젖니를 뽑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어릴 적 흔들리는 이를 묶은 실을 문고리에 붙들어 매고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문을 잡아당기면 금방 뽑히지만 갑자기 놀라게 했다고 울고불고 하던 생각이 난다. 영 서운한 생각에 치과에 가기 전날 밤 눈을 감고 앞니의 공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장시간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했다. 앞니야 너와 한평생 같이 가려했는데 먼저 보내 미안하다. 잘 돌보지 못하고 관리에 부주의한 내가 미안하다. 그동안 60여 년 간 나를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듣기 싫은 말, 하기 싫은 말 이빨 사이로 내보내는 동안 그걸 듣느라고 고통도 심했을 거고, 나를 위해 음식을 부수고 갈아서 1차로 소화시키느라 얼마나 노고가 심했을까? 사람은 먹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고 한 성경말씀처럼, 욕과 저주의 말이 입에서 나오려할 때 방패처럼 그것을 막아준 잇몸의 앞니야, 정말 고맙다. 너로 인하여 내가 이처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나이 먹도록 건강했고, 그리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노고를 어찌 말로 다하랴? 이제 너를 먼저 보내는 이별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니 몸의 한 부분을 잃는다는 사실보다 너와 이별 한다는 게 그리고 다시는 너를 볼 수 없다는 게 서글퍼지는구나. 늘 내 혀가 닿았던 너이고 누구보다도 내 혀와 친했던 너인데 말이다. 내 인물을 멋지게 만들어 준 너의 역할을 영원히 기억하마. 그리고 너는 나에게서 이탈하여 흙으로 돌아가 나중에는 우주의 기본 원소로 환원되겠지. 언젠가 나도 너처럼 되어 이 우주의 어느 부분에서 원자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 또 만나자. 나의 한 부분이었던 너를 사랑해, 그리고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뽑은 자리에는 임플란트 대신 뺀 자리 양옆의 이를 갈아서 브릿지를 하였다. 웬지 임플란트를 위해 드릴을 돌려 앞니자리에 구명을 내는게 싫었다. 브릿지를 한 모양을 보니 보기에 좋았다. 단정하게 정렬된 브릿지와 이제 함께 해야 한다.

 

언제나 기억속에 생생한 이빨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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