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 아래의 전쟁

침상 아래의 전쟁

2025. 7. 10. 15:58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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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침상 아래의 전쟁


1970년대 초, 나는 스무 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나라 전체가 가난했고, 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급품은 늘 부족했고, 있는 것도 닳고 해진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일 점호 때면 총기부터 시작해 수통, 반합, 단검까지 숫자가 딱 맞아야 했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날 밤은 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여분을 갖춰야 했다. 수통이 하나여도 두 개쯤은 더 챙겨야 마음이 편했다. 반합은 남는 게 있으면 닦아서 보관했고, 단검은 숨겨 두었다가 누군가 잃어버리면 빌려주는 식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도우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치열한 생존이었다.  중대 안에서도 소대 간 경쟁은 보이지 않게 치열했다. 낮에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밤이 되면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물건을 슬쩍하러 남의 내무반에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느 날은 우리 소대 침상 아래 나무 바닥이 이상하게 들썩이는 걸 느꼈다. 불침번이 조용히 손전등을 비췄을 때, 옆 소대 병사가 기어 나오다 걸렸다. 담요 하나 챙겨가려다 딱 걸린 것이다. 혼쭐이 났지만, 그 병사도 우리랑 다를 것 없었다. 우리도 다른 날엔 반합 하나쯤 몰래 가져오기도 했으니까.

심지어 휴가를 나가는 병사에게 돈을 쥐여주며 수통 하나, 단검 하나 사 오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부대 근처 시장에는 중고 군용품을 파는 가게가 은근히 많았다. 어떤 병사는 민간인처럼 차려입고 몰래 나가 보급품을 사오기도 했다. 군용품 하나에 몇 천 원씩 들었지만, 그 돈보다 잃어버렸을 때 받는 벌이 훨씬 무서웠다.

그 시절엔 물건 하나 잃는 게 죄였고, 그 죄는 밤샘 구보나 얼차려로 치러야 했다. 얼차려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을 갈아먹는 고문에 가까웠다. 그래서 모두가 그 벌을 피하려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어떤 이는 아예 이름도 지우고 부대 번호도 없는 물건을 따로 챙겨두기도 했다. 누가 가져가도 추적이 안 되는 ‘공용품’이었다.

이런 상황은 소대 간에 일종의 경쟁심을 불러일으켰다. 누가 더 완벽하게 방어하느냐, 누가 더 영리하게 물자를 보존하느냐. 우리는 밤마다 자물쇠를 걸고, 창고처럼 개인 보급함을 정리했다. 감시도 철저해졌고, 신뢰는 점점 사라졌다. 서로를 의심하며 밤을 보냈고, 불침번은 총보다 눈을 더 날카롭게 들고 다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환경이 우리를 하나로 묶기도 했다. 외부에선 싸워야 할 적이 없었지만, 내부에서 우리는 끝없는 전쟁을 치렀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협력했다. 누구 하나 벌을 받으면 모두가 같이 벌을 섰고, 누구 하나 물건을 잃으면 다 함께 찾았다. 그것이 군대였고,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부실한 보급품에 짜증도 났고, 도둑질에 가까운 ‘물건 돌리기’도 불쾌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긴장 속에서 형성된 단결력과 생존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순수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침상 아래를 기어다니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벌이던 작은 전쟁. 그 전쟁은 총 없이도 충분히 치열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했다. 남의 물건을 지키기 위해 잠을 설치고, 나의 물건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 시간들이, 내 인생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 속에서 내가 배운 생존의 기술, 동료애, 경계심, 책임감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침상 아래를 파고들던 병사의 눈빛처럼, 뚜렷하고도 낯익은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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