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전주음식, 맛의 절제가 빚어낸 깊은 울림

[수필] 전주음식, 맛의 절제가 빚어낸 깊은 울림

2025. 12. 24. 16:49일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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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전주음식, 맛의 절제가 빚어낸 깊은 울림

 

교통의 비약적인 발전과 미디어의 범람은 우리네 밥상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맛집들이 그 비법을 공유하고, 이름난 맛들이 대도시의 골목마다 복제되면서 미식의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효율적인 평준화는 역설적으로 그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숨결과 미묘한 차별화를 앗아갔다. 그 어디를 가도 자극적인 달콤함과 인위적인 감칠맛이 혀를 장악하는 시대, 나는 전주의 음식에서 역설적이게도 '비어 있음'이 주는 고귀한 철학을 발견한다.

전주의 맛이 여타의 곳과 궤를 달리하는 이유는 그 기저에 깔린 세 가지 절제에 있다.

 

첫째, 부족함으로 채우는 '절제의 미'

전주의 상차림은 탐욕스럽지 않다. 음식의 양을 넘치지 않게, 오히려 아주 약간의 모자람을 남겨 두는 것이 그들만의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식객의 미각을 깨우는 고도의 심리적 장치다. 혀끝에 남은 아쉬움은 다음 숟가락을 향한 설렘이 되고, 그 갈구함은 마침내 한 끼의 식사를 '배를 채우는 행위'에서 '맛을 탐미하는 예술'로 승화시킨다. 다 채우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절제의 미학이다.

 

둘째, 엷음으로 지켜낸 '중용의 미'

전주 음식의 양념은 결코 재료의 본질을 앞서나가지 않는다. 양념의 농도를 한 발짝 뒤로 물리며 엷은 기조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전주가 지향하는 적정성(適正性)이다. 강렬한 짠맛이나 매운맛으로 혀를 마비시키는 대신, 원재료가 가진 고유의 향이 양념 사이를 유영하게 한다. 이는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담백한 문장과 닮아 있다.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그 중용의 맛은 먹는 이의 마음까지 평온하게 다스린다.

 

셋째, 조화로 완성하는 '깊이의 미'

수많은 찬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면서도 결국 하나의 조화로운 풍경을 이룬다는 점이다. 가짓수가 많다 하여 어느 하나가 튀어 흐름을 깨뜨리는 법이 없다. 마치 잘 짜인 오케스트라처럼, 각각의 나물과 장아찌는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전체의 풍미를 두텁게 쌓아 올린다. 이 조화로운 깊이야말로 전주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문화'로 느껴지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전주의 음식 맛은 속도와 자극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기다림''여백'을 가르쳐준다. 혀가 아닌 마음으로 음미해야 비로소 들리는 그 정갈한 소리, 그것이식 내가 전주를 다시 찾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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