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52]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52]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2024. 10. 24. 09:18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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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1년 10개월 짜리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와서 원래는 박사과정을 지원하여 1년 차에 M.phil(철학석사)에서 Ph.D.(철학박사)로 진급을 하는 시험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고급학위는 전공별로 그냥 전공박사를 수여하는 것과 철학박사라는 명목으로 전공에 부여하는 학위 두 가지가 있는데 보통 전문박사학위는 논문을 제출하지만 논문심사가 위원회에 출석하지 않고 서면심사만 하는 반면 철학박사는 반드시 위원회에 출석하여 구술시험을 치루어야만 하였다. 통상 철학 석사에서 박사로 진급하기 위하여는 1년 공부 후에 시험을 치르고 진급 하는게 보통이다. 영국에서는 이런 코스와 방법이 보편적인데 바로 박사로 입학하여 공부를 할 수도 있으나 이런 경우에도 3년을 이수하여야 박사논문을 제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입학하던 2000년부터 규정이 바뀌어 철학석사에서 박사로 진급을 하는데는 2년을 요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전체 학업기간이 3년인 점에서는 동일 하였다. 나의 유럽으로 여행은 우연한 계기에 이루어 졌다. 높은 생활비와 시간부족으로 가까운 유원지 한 두 곳 정도 가보리라 생각하던 것이 예기치 않게 42일 이라는 대장정의 유럽 자동차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아이들 방학이라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최초 시작이었다. 그러나 다른 계기는 1년 차 되던 2001년 5월에 PhD 후보과정 진급 시험에서 시작된다. 이 시험은 필기가 아닌 위원회에 출석하여 구술시험을 치르는데, 철학석사과정에서 이수한 공부를 바탕으로 박사과정에서 연구할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이를 토대로 1-2시간 동안 질문과 답변을 하는 구술시험이다. 시험위원은 위원장을 포함 3명이며 지도교수가 참고로 출석하게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심사도중 논쟁이 있었는데 내가 제출한 계획서의 연구방법론 모델과 이론에 대하여 심사위원장의 이견이 있어서 수정 제출을 요구하였다. 심사위원장은 내가 연구하는 모델과 다른 모델을 제시하였으나 나는 내가 연구하는 모델이 이 연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들은 위원장이 제시한 방안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요약하면 심사위원 측의 순수연구 방법채택과 나의 응용연구 방법의 차이라고나 할까?

[PhD 후보자 구술시험 상상도]

그러나 나는 내가 제출한 보고서 대로 연구를 하고 그 방법론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므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위원회가 나의 연구논문 제안보고서에 대하여 수정제출을 요구하면서 나는 이 시험과정에서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럴 경우 6개월 이상을 더 연구하여 다시 시험을 보든지, 아니면 포기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의 장학금이 1년10개월이었고, 나의 계획은 장학금이 끝난 후 다른 기관에 장학금을 신청하여 나머지 1년 2개월을 버텨볼 작정이었는데 이 시험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여 뒤의 계획은 상상조차 못할 지경이 되었다. 5월에 시험을 치르고 위원회의 요구에 의하여 2-3회 수정 보고서를 만들고 지도교수와 상의한 후 이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위원들의 일정이 바빠 그들로부터 제대로 회신을 듣지 못하였다. 나는 줄곳 나의 방법론에 대하여 계속 고집스럽게 지지하였고 위원장이 제시한 모델은 참고하는 수준에서 논하여 수정보고서를 제출하였다. 6월말이 되어 방학이 다되는데도 위원회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나는 양자 택일을 해야 했다. 공부를 이 선에서 그만 접든지 아니면 6개월을 더 연구하여 새로운 보고서를 제출하든지,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바로 현장 연구(자료수집)를 들어가야 하는데, 재시험으로 인하여 시간을 허비하면 사실 연구는 종 친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구상한 것은 여름은 가을학기의 인터뷰 준비와 분석도구마련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짜놓았는데 모든 계획이 다 흐트러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내 속은 이런 문제로 바삭바삭 타가고 있는데, 집사람은 아이들 방학인데 이 여름을 그냥 여기서 보낼 수 없다 라고 주장하며 여행을 가기를 제촉하였다. 사실은 나 자신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못하고 마음속은 우왕좌왕 했다. 빨리 학교로부터 뭔가 연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갑자기 안되면 말지 라는 생각이 솟아 오르며 그래, 여행도 공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6월말에 학업에 대한 회의감에 시내 하이스트리트로 집사람과 나와 여행을 준비하게 시작했다. 여행준비라야 1주일 동안 자동차 정비, 유럽자동차 보험가입(종합보험, 응급구조서비스), 도버해협을 건너기 위한 배편예약, 여행자 보험 가입, 토마스 쿡 여행자 수표 준비, 캠핑장비구입, 유럽 지도와 유럽전역의 숙소정보가 있는 책 구입, 일정계획, 김치 한 박스 담그고, 쌀과 음료수, 기타 상하지 않는 요리재료 등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학교가 모두 쉬는 여름, 공부한다고 도서관과 연구실을 왕래하는 것도 그렇고, 집에 머물러 보아야 집세와 식비는 고스란히 월정액으로 지출 될 것이고, 이런 생각을 하니 오히려 여행을 가버리는 게 생활비도 절약하고 경험도 하는 개이득이 될 것 같았다. 특히 시험에서 한 번에 깔끔하게 통과되지 못하고 그 결과가 아리송하게 시험위원회에 계류된 것이 도무지 마음에 걸려 홀연히 떠나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또한 잘 안 되는 일을 고민할 필요없이 잊어 버리는 게 상책이다 라는 생각이 여행을 더 부채질 하였다. 이즈음엔 학업을 포기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내 마음에 계획되어 있었다.

여행에서 일정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과 자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매우 고민이 되었는데 한정된 비용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것은 역시 자동차로 가는게 낳다는 생각 끝에 자동차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동형의 포드 스콜피오 2.9] 

 

내가 그 때 운전한 차는 10년된 포드 스콜피오로 2900cc 급으로 차체가 크고 힘이 좋았으며 그러나 기름을 약간 많이 먹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 당시 그 차가 9만 마일 이상 달린 차인데, 여행으로 약 1만 마일을 달릴 것을 예상하고 정비소에 특별히 여행을 위해 잘 정비해 줄 것을 부탁을 하였다. 정비소에서는 여행을 하면서 아침에 엔진오일을 한번씩 검사해보고 부족하면 보충하라고 충고 하였다. 그리고 여행 중에 ABS 실패 싸인이 나올지도 모르니 그럴 경우 그냥 달려도 된다고 조언을 하였다. 음식은 아침은 보통 우유나 시리얼을 사서 먹고, 점심은 돌아다니면서 샌드위치 같은 것을 사먹고, 저녁은 숙소에서 한식으로 먹든지 아니면 라면을 먹기로 하였다. 유럽의 어느 수퍼든지 샌드위치를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는 다 팔고 있으므로 점심은 사먹는 것보다는 돌아다니다가 샌드위치를 사거나 바께트 빵을 사서 햄과 같이 먹는 방안을 구상하였다. 숙소는 주로 캠핑장을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호텔 값이 비싸므로 호텔을 이용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와 여행의 목적을 살릴 수 없었다. 물론 캠핑장이 없는 경우 유스호스텔을 이용하기 위하여 유럽 이용 가능한 유스호스텔 (가족멤버싶)을 발급 받아 챙겨두었다. 캠핑장을 장기간 이용하므로 어떻게 캠프를 칠 것인가를 연구하였는데 캠프바닥의 보강재를 열심히 준비하였다. 장기간 찬 바닥에서 자야하므로 비록 여름이지만 한기를 막을 수 있는 보강재를 많이 준비하였다. 텐트는 기본적으로 바닥에 비닐이 깔려있어 방수가 되지만, 여기다가 가족 1인당 하나씩(4개)의 얇은 프라스틱 매트를 구입했다. 이 매트위에 다시 플라스틱 비닐 돗자리를 덮고 그 위에다 헌 이불하나를 가져가서 깐 다음, 그 위에 침낭을 하나씩 깔고 자도록 계획을 하였다. 이 짐을 차에 실어보니 뒤 트렁크가 가득 차고 뒷자리의 아이들 좌석 밑에까지 짐을 실었는데 그 2900cc 짜리 큰 차가 짐으로 꽉 차버렸다. 이런 준비는 특히 유럽은 여름이 덥지만 북유럽은 밤이 되면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자주 내리며 이런 경우 보온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태리 스페인 같은 경우는 날씨가 더워서 텐트 바닥을 이렇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북유럽이나 스위스, 비가 많이 왔던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같은 나라에서는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일정을 준비하며 처음에는 각국의 정보를 다 뒤져 보았고 정리를 하였는데 너무 많아 나중에는 이 정보를 다 관리하기가 불가능하였고 가족들 결정은 도버를 건너서 내리는 첫 목적지만 정하고 돌아올 때 도버에서 차를 배에 싣는 항구만 정하고 나머지는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가기로 하였다. 일정을 정해도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냥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대체로 여행 정보는 나라와 도시의 특성이 나와 있는 한국판 여행천하, 유럽여행 등등의 책자를 지참하여 가서 도움이 컸다. 이런 책자들은 어느 나라나 도시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정보에 따라 선택하여 관광을 하고 고적지를 답사하므로 여행 길잡이로 좋았다.

 

[캠핑장 상상도]

도버에서 차를 싣고 페리를 이용하여 건너는 비용은 2000년도 초의 경우 보통 250 파운드 정도를 받았는데, 여행사에서 싼 배편을 알아보니 일정 요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대폭할인을 해주는 정보가 있었다. 싼 편은 189파운드에 월, 수, 금요일을 이용하는 편이 있었다. 보통 도버를 차를 가지고 건널 때는 프랑스의 깔레라는 곳으로 많이 가는데 우리는 벨기에로 가기로 하였다.

 

[도버항에서 승선 대기줄 상상도]

 

벨기에의 오스탕트 (Ostent)는 깔레보다 북쪽에 있고 이것은 우리의 개략적인 스칸디나비아 반도 공략 일정전략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프랑스의 운전매너가 아주 안 좋다는 풍문에 들은 바에 의하여 첫 운전지로는 피하자는 의견과 프랑스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에서 충분히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자는 의견이 맞물려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영국에서는 오른편에 운전석이 있고 왼편도로로 운전을 하지만 대륙에서는 다시 왼편에 운전석이 있고 오른편도로를 운전해야 하는데, 영국에서 가지고 간 차는 왼편에 운전석을 가지고 오른편도로로 달려야 하므로 운전 시 고도로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운전을 하면서 언어가 다른 지역을 지나면서 표지판을 읽어야 하고 국가마다 다른 교통법규에도 조심을 해야 하며, 주차문제, 그리고 운전 중 표지판을 통하여 숙소를 찾아야 하는 유의점이 있었다. 42일간 운전 거리는 작게는 매일 200마일(320 Km) 많게는 하루저녁에 1,200 (1,920 Km) 마일을 달리는 적도 있었는데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유럽운전은 교통법규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달리는 경우에는 그 나라의 법규를 준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영국에서 대륙에서 운전을 하는 경우 반드시 헤드라이트가리개를 헤드라이트 중앙에 붙이고 다녀야 하는데 이는 야간이나 주간에 헤드라이트를 사용시 운전자가 반대인 관계로 라이트의 위치와 각도가 영국과 대륙이 약간 달라서 나타나는 눈부심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영국 차가 대륙에 가면 영국 차에 가리개를 붙이고 대륙 차가 영국에 오면 대륙 차에 이를 붙이도록 하고 있었다.

 

[눈부심 ; 자료출처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41615220780538 ]

기본적으로 각국 공통법규는 예비 라이트 세트를 차에 구비하여야 하고 고장표지판, 자동차 등록증, 자동차 검사증, 보험 등을 필수적으로 구비하도록 하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는 조건이 엄격하여 차량에 소화기를 비치하도록 하고 있고, 스페인의 경우는 고장 표지판을 반드시 2개를 가지고 다니도록 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차에는 반드시 그 나라를 표시하는 큰 글자로 된 마크를 붙이도록 하고 있는데, 영국은 GB라는 마크를 달도록 하고 있다. 그 외에 공통적인 차량 구비물은 헤드램프 어댑터, 응급구조장비, 싯벨트가 의무적으로 공통사항이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 이태리
헤드램프어댑터 o o o o o o o
GB마크 o o o o o o o
삼각대 o o o o o x 2 o o
스페어전구킷 o o o o o X X
응급구조킷 o o o o o o o
소화기 o o o o o o X
싯벨트 o o o o o o o

x : 권장사항 o 필수사항

 

차의 보험을 들고 만약에 운전 중 사고가 날 경우에 대비하여 이를 문의하니 사고가 났을 경우 우편으로 보내준 보고서 용지에 보고서를 작성하여 현지 경찰의 사인을 받아 회사로 제출하면 처리해준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험회사로부터 여러 겹의 보고서 용지가 왔는데 그것이 사고보고서 용지였다. 다행히 42일간 한 번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행을 간다고 하였더니, 같은 학교의 보조의학 박사학위를 하는 닥터 박 (그는 이미 한국의 경희대 한의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었다) 이 놀리면서 이 선생님 10년 된 포드 차로 두 달간 유럽여행을 하신다니 신문에 날일입니다. 포드사에 연락하여 스폰서 되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라고 놀리면서 무사히 다녀오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영국에 와서 1년 반을 보냈지만 기름 값과 숙소가 비싸 여행을 엄두도 못 내어 본 나였다. 사실은 여행을 마치고 영국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유럽에서 1개 나라를 여행할 경비는 (보통 수도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도시를 둘러보는 정도) 영국에서 내가 사는 가까운 지역에서 하루 보내는 것과 맞먹었다.

돈을 사용하는 문제도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사실 여행을 다녀보니 유럽 단일화의 이유를 대번에 알 것 같았다. 국경의 통과는 사실 우리나라의 시도 경계를 지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모든 국가들이 국경에서 차를 세관 검색을 실시하고 여권을 검사하고 환전을 한다면 유럽은 매우 불편할 것이다. 다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국경은 그냥 휙 통과하면 끝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국경지대에서는 밀수 등을 우려한 세관검사가 엄격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통과다.

[벨기에의 오스탕트 (Ostent)]

국경마다 세관에서 그 큰 트럭들을 다 세워 검사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또한 작은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은 악셀 몇 번 세게 밟으면 2-3개국은 휙 지나는데 돈을 사용하기 위하여 가는 나라마다 환전을 하면 굉장히 불편하다. 여행을 다녀보니 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연유에서 유럽 단일 통화가 출현한 것 같다. 우리가 여행하던 2001년은 유럽 단일화 나오기 1년전 이어서 각국의 화폐가 필요한데, 돈을 바꾸어 가기가 너무 복잡하여 영국의 토마스 쿡 여행자 수표로 바꾸어 갔다. 그런데 영국의 화페와 토마스 쿡은 유럽 전역을 통하여 아주 정평이 있고 톱 클래스의 수표였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수수료 없이 환전해 주고 토마스 쿡 여행자 수표를 소지한 고객에게는 특별한 서비스를 해주었다. 영국의 스털링은 유럽 주요국가에서 권위가 있었다. 토마스쿡에서 권장하는 환전요령에서는 여행국에 따라 환전을 다음과 같이 권장하였다.

국가명 여행자수표 기타
오스트리아 스털링  
벨기에 유로  
핀란드 유로  
프랑스 프랑  
독일 유로  
그리스 유로  
아일랜드 스털링  
이태리 스털링  
룩셈부르크 유로  
네덜란드 유로  
폴투갈 스털링  
스페인 스털링 혹은 페소  

* 유로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 웹사이트를 참조

www.thomascook.com,

www.eropa.eu.imt/euro/html/entry.html

www.bankofengland.co.uk/euto

www.ecb.int

 

유럽 단일 통화가 출현하였다 하여도 유럽 가입국가만 그 통화가 유통되므로 많은 국가의 여행에는 이런 여행자 수표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신용카드도 편리하다. 신용카드를 쓰면 현금 인출기에서 자동환전이 되어 환전소나 은행을 일일이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수료가 높을 것 같아 국경을 지나면서 환전을 못할 경우에만 사용을 하였다. 왜냐하면 신용카드도 한달 이용한도액이 800파운드(한화 약 160만원)에 제한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스털링(파운드를 이렇게도 부른다)은 유럽 어느 국가를 가도 그 화폐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대부분 사용 할 수 있었다. 여행자 수표는 영국 스털링은 물론 유로화로도 준비를 했는데, 2001년은 유로화가 나오기 전이지만 여행자 수표로는 사용이 가능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본 것은 유럽 연합 국가들은 대부분 유로화 사용에 대비하여 모든 세금 계산서, 영수증이 유로화로도 표시되도록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토마스 쿡 여행자수표 셈플]

북유럽 국가중 유럽화의 멤버로 가입을 안한 국가는 유로화에 대한 은행의 태도도 달랐다. 은행에서도 유로화 여행자 수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통화의 선호에 있어서 독일의 마르크화는 유럽 어느 국가에 있어서도 최고 대 환영이었다. 그 나라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나라의 통화는 막강한 위력이 있었다. 유럽 각국에서는 독일 마르크화가 아시아 국가에 있어서 달러화처럼 선호되고 어디서나 통용되는 화폐이었다. 누군가 비상시를 위하여 마르크화를 충분히 가지고 다니라는 말을 기억하여 조금 많이 환전하여 두었더니 나중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유럽 대륙에서 독일은 땅덩어리가 네모나고 여러 나라에 인접하여 있어서 본의 아니게 4 번 정도 지나면서 구경을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환전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유로화에 대한 사용준비는 독일 이 가장 모범적이었다 독일은 단일 통화를 주장하는 주창국이자 적극 지지국으로 이를 가장 잘 실천하기 위한 준비가 철저하였는데, 어느 슈퍼나 체인점을 가도 영수증이 마르크화와 유로화 두 가지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모든 상점이 예외없이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독일의 경제규모가 크므로 교역도 많고 또한 거래에서 일어나는 관세나 외환 수수료 등을 감안하여 교역에서 오는 무역수지의 관리나 투자 등의 여러 사업을 위하여 경제규모가 큰 독일로서는 현재 가진 경제규모를 향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일 통화의 필요성을 더욱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화폐들로 인한 경영경제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비능뉼은 독일같은 덩치큰 경제에 있어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 상상이 된다. 그런데 영국과 같은 경우는 사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스털링을 유로화로 바꾸는데는 반대를 하는 입장이 우세하나 토니 정부는 단일 통화를 지지하는 입장이나 국민의 반대를 고려하여 이를 투표에 붙이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후에 이 투표로 영국은 유로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운드화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런 정책은 나중에 브렉시트(EU 탈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우는 물론 교역과 경제규모는 독일 다음가는 규모이나 공산품 등이 유럽 대륙에 좋은 제품으로 어필하는 입장이지는 못한 것 같다. 그 보다는 문화적 상품으로 벌어들이는 것이 경제적 교역에 따른 거래와 버금가고 공산품이 독일과 같이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치지는 못하므로 상거래 등의 관계에서 단일 통화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영국의 스털링은 지난 세기 영국이 명성을 떨치던 때부터 국제금융계에 막강한 영향을 주는 기준 통화 즉, 국제적 공공차관이나 상업차관 설정 시 리보금리라는 기준을 부여하는 등 스털링은 그 화폐가 주는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이미 달러보다 더 확고하고 또한 국제 금융시장에서 전통적으로 영국이 미친 금융정책이 막강하여 스털링은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명성을 유지하고 전통을 사랑하는 영국인의 입장에서 이 전설적인 스털링을 포기하고 유로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영국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 단일 유럽의 문제는 사실은 영국과 대륙간의 관계보다 대륙 내부에서 더 절실한 문제였다. 특히 경제력이 큰 독일은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유리하므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유럽도 가만히 보면 지리적 위치에 따라 그 권역이 정하여 진 것 같다. 유럽의 중심은 이런 입장에서 독일을 중심한 벨지움, 핀랜드, 그리스, 룩셈부르그, 네덜란드 등이 유로에 적극 지지자이며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이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독자적인 화폐체제를 유지하는 입장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자국의 통화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는 특이하게도 주변국가의 통화를 전부 다 수용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운명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자국화폐가 없고 인근국가의 화폐를 다 인정한다. 그것은 여행 중 숙소비를 지불하다보면 받는 돈을 명시하여 놓는데 룩셈부르크의 경우 프랑스 프랑, 독일 마르크, 유로수표, 등 여러 가지를 명시하여 놓았는데, 독일,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는 자기 화폐가 아니면 받지 않는 경우를 보면 규모가 작은 국가는 인근 국가의 돈을 받지 않으면 사실은 여행객들이 통과하는데 두어 시간 밖에 안 걸리는 이 나라를 누가 환전까지 많이 해가면서 불편을 감수해가면서 관광하러 오겠는가? 국가도 돈이 있어야 운영을 하므로 다양한 돈을 받는 편리라도 주어여 여행객이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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