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2] 천국의 소식과 지옥의 소식

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2] 천국의 소식과 지옥의 소식

2024. 10. 5. 16:50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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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국의 소식과 지옥의 소식

 

 

2003년 봄, 영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회사에 복귀 하고 적응을 위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10살 된 딸 주영과 그녀의 영국 학교 친구인 조지아(Gorgia, M)의 이메일 교신을 도와주기 위하여 내 이메일 주소를 딸이 사용하도록 허용하였다. 당시 영국의 대부분 학부모들은 초딩 자녀가 인터넷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넷의 게임과 음란물의 해악에 대하여 아동들을 보호할 근본적 대책이 없이는 아예 인터넷에 접근을 막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인터넷 교육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부모로부터 동의서에 서명을 받은 후에 교육을 하였다. 연구차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한 중학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학교는 인터넷을 교육한다는 사실 보다는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안전성과 예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학교 학생들 중 이메일을 사용하면서 예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학생의 이메일 사용을 중지 시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례한 언사를 사용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이며,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비교육적입니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 정보화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 초딩 저학년도 이메일과 채팅은 일상적인 대화의 수단이 되고 아이들의 놀이터는 운동장이나 놀이터가 아니라 PC 방이 되어버렸다. 영국처럼 인터넷 에티켓이 거론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컴퓨터의 귀재가 되어버렸다.

조지아의 엄마 세이디(Sadie, G.)는 나와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라, 우리는 딸들이 이메일을 사용하여 서로 우정을 키우도록 도와주었다. 도와주는 거래야 고작 이메일을 열어 주는 것이다.

<딸의 친구 조지아와 그의 조카>

 

봄이 한창 무르익는 5월 중순, 세이디(Sadie, G.)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처음엔 비아그라 사라는 스팸메일이 온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영국에서 귀국하니 영어를 안 봐서 살 것 같았다. 영국에 살았다면 영어가 쉽고 친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실은 영어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팠다. 귀국해서 영어를 안보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영국인들 틈새에서 안 되는 영어를 잘해보려고 노력하느라고 3년을 고생했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영어로 온 메일이라 스팸으로 알고 바로 지우려다가 발신인 이름이 낮익어 제목을 들여다 보았다. 이메일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제이슨의 죽음”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이 메일을 보낸 세이디의 화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제이슨이 죽었어요. 지난달에 제이슨은 부인인 레이첼과 뉴질랜드에 휴가를 갔어요. 거기서 높은 산을 등산했어요. 제이슨은 정상을 가고 싶어해서 계속 올라갔고, 레이첼은 다리가 아파서 중간에 내려왔답니다. 레이첼은 제이슨이 곧 하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밤이 이슥하도록 내려오지 않아 119에 신고를 했답니다. 밤새도록 헬기를 동원하여 수색한 결과 골짜기에 실족한 제이슨을 발견했는데 이미 사망했답니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을 내렸답니다.”

 

제이슨은 엑시터(Exeter)시(잉글랜드의 남서부의 데본(Devon)州의 州都로 플리머스에서 A4 고속국도로 60마일 북쪽에 위치)에 있는 박애교회(Philianthropical Church)의 주일학교 교장이다. 놀란 가슴을 심호흡으로 안정을 찾고 그러나 바쁜 마음으로 위로의 답장을 보냈다. 그의 명복을 빌고 특히 그의 처 레이첼이 슬픔을 딛고 잘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보냈다. 레이첼은 전형적인 영국 시골의 금발에 푸른 눈빛을 지닌 작은 키에 슬림형의 아름다운 레이디였다. 그녀는 60년대의 한국 시골처녀보다도 더 앳되고 수줍음을 탔으나 신에 대한 믿음은 강했다. 제이슨과의 우리가족의 인연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엑시터에서 정착한 초기 그러니까 2000년 6월경 우리가족은 영국 생활을 배우려고 교회를 다니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주위에 물어보아도 교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시험 삼아 다녀보기로 했다. 우선 주말에 우리는 시내로 나와서 멀리 십자가 종탑이 보이는 교회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성 레오나드(St. Leonard)라고 간판이 붙은 교회에 도착했다. 이 교회는 세운지 200년이 넘은 성공회 교회였다. 신도는 한번 예배 시 약 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우리나라의 중간 정도 교회인데 여기서는 대형교회로 분류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교구를 일컬어 파리쉬(Parish)라는 말로 표현을 하는데 처음에는 교회 옆을 지나면서 Parish라는 단어를 보고 여기가 무슨 파리의 무슨 지부인가 아니면 파리풍의 사람들이 무슨 모임을 가지는가? 라는 뚱딴지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사전을 뒤져보니 영국의 성공회의 교구를 의미했다. 아무튼 이 교회는 예배 중에는 주일학교를 운영하여 아이들이 친구도 사귀고 놀 수도 있어 여러모로 유익했다. 내가 연구실 일로 아주 바쁘게 된 3년차 까지도 주일에 꼬박 출석을 하였다. 주일 외에도 해리스 목사님이 주관하는 수요일 저녁 야간 성경공부를 통해 말 그대로 살아있는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각종 교회주재 파티, 크리스마스 축하행사, 전통댄스파티, 만찬초대, 화창한 날 야외 단체 소풍을 가면서 점차 현지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교회가 크다보니 교회선생님과 아동의 친밀한 대화나 참여보다는 약간은 관료주의적이고 주일학교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우리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2001년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아이들과 어떤 특별활동을 할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집사람이 두 가지 제안을 해왔다. 하나는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 활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연관찰활동(Birdwatching)-즉 새를 관찰하거나 동식물의 분포상태를 현장에 가서 살펴보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두 가지 활동 다 우리 식구의 생활 스케쥴과는 잘 안 맞았다. 첫 번째 스카웃 활동은 4마일이나 떨어진 엑스윅(Exwick)이라는 지역의 마을 회관에서 주재하는데 전화를 해 알아보니 자리가 꽉 차서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좀 기다려 보라고는 했는데 이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연관찰 활동은 매우 흥미로웠으나 매번 참가 시 비용을 일인당 2-3파운드를 지불하고 부모가 아이를 동반해야 하며 한번 참가 시 장소가 매번 바뀌고, 때로는 장거리 여행도 불사해야 했다. 둘 다 어려웠다. 그즈음 한 장의 광고물이 집으로 배달이 되었는데 거기엔 박애교회라는 곳에서 청소년 회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시간도 매주 금요일 7시정도로 하계와 동계는 1시간 정도 차이가 있지만 괜찮았다. 다만 그 내용이 궁금하였으나 일단 아이들을 보내보기로 하고 9월 첫날 보낸 결과 긍정적이었다. 더욱이 거기엔 그 클럽의 교장으로 제이슨이 자신을 소개하고 우리가족을 환영하였다. 우리아이들은 이 교회의 청소년 금요일 저녁모임에 잘 적응하였고 많은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매월 한번은 패밀리 타임으로 일요일 오후 예배를 보고 함께 식사를 하고 그동안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 거기서 보니 이들도 샐러드를 먹을 때는 작은 파를 통째로 씻어서 다른 야채와 같이 놓고 소스에 찍어 머리 째 우적우적 먹는 것을 보고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을 느꼈다. 다양한 종류의 빵과 스프레드(빵에 발라먹는 것), 과자와 치즈 등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아이들이 한 4개월 정도 그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닐 즈음, 조지아(Gorgia)와 리(Lye)라는 아이가 그 교회를 나왔는데 모두 딸(주영)이 다니는 학교의 같은 반의 아이들이었다.

 

주영이와 조지아는 그 반에서 베스트프렌드(한 반에서 단짝)이었으므로 이들은 그 날은 밤낮으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조지아의 아빠는 영국전화국인 통신회사(British Telecom)에 다녔고 엄마는 엑시터의 큰 병원에서 접수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두 부부가 다 공공성이 있는 좋은 직장에 근무하여 집은 비교적 유복하였고 조지아는 막내딸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부모로부터 늘 새로 유행하는 드레스나 신발, 가방과 귀걸이, 그리고 기타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물을 받아 최신유행으로 치장하고 학교를 다니는 멋쟁이였다. 반면에 우리는 그런 유행에 눈이 어두워 조지아가 새로 뭘 사면 그제 서야 이런 게 있나보다 하고 따라잡는 그야말로 조지아는 그 학교의 유행의 기준표였다. 저녁 청소년 클럽의 덕택으로 조지아의 엄마인 세이디(Sadie)와 우리는 더 가까워 질 수 있었고 이런저런 일상사를 교환하는데 스스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귀국 후 세이디와 나는 서로의 이메일을 서로의 딸들을 위하여 개방하여 두고 아이들이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세이디가 나에게 제이슨의 소식을 이메일을 보낸 것은 그간 아이들을 같은 교회에 보내면서 내 딸 주영이가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저간의 소식을 전해주시 위함이었다. 세이디의 이메일을 받은 날 나는 저녁에 집에 귀가하여 이 소식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하였다. 모두들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귀국하기 위하여 엑시터를 떠나기 전날인 금요일 그를 피라미드(Pyramid)라고 부르는 수영장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들은 수영을 하느라고 추워서 뜨끈뜨끈한 피쉬엔칩(Fish & Chip)을 제이슨과 함께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체구는 작았지만 늘 자신에 찬 삶을 살았다. 아이들은 그를 무척 따랐고 교회의 성원들은 그를 신망했다. 박애교회는 몇 번 출석하여 보니 목사가 없었다. 예배는 자율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에 의하여 돌아가면서 진행이 되었다. 제이슨은 청소년클럽의 교장을 맡고 있어 교회간부로서 교회의 예배의 진행 등을 관여하면서 이 교회의 리더이자 관리자로서 봉사했다. 이 교회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예배는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고, 진행은 주로 제이슨이 맡고, 그리고 청년 성경공부시간은 고든(Gordon)과 그 멤버들, 특히 고든(Gordon)은 늘 교회의 잔디가 자라면 손수 잔디를 깎으면서 자신은 모태신앙임을 늘 자랑했다. 그는 큰 상점을 운영했다. 즉 영국 전통적인 철물점과 만물상 같은 것인데 가스배달, 빗자루, 솔, 화단가구는 용구, 사탕 비스켓 등등 일반 슈퍼와는 다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상점인데, 우리 집에서 위쪽으로 두 블럭 후 교차하는 폴스로(Polsloe) 로드라는 길을 따라 신호등이 나오는 교차로 까지 가면 그 끝 모퉁이에 그 상점이 고든 플래시(Gordon Flash)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였는데, 그와의 인연이 또한 묘했다. 이 동네에 이사를 오면서 만난 한국 사람이 곽씨였고 그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젊고 사업을 하던 사람인데 IMF를 만나 좀 쉴 겸해서 내가 다니던 대학의 MBA(경영행정대학원) 1년 과정으로 공부를 하던 차 마침 내가 그 도시에 도착한지 한 6개월 후 학교를 마친 다음 귀국 길에 처분하고 남는 살림살이를 나에게 남겨주었는데 무슨 살림이 그리 많은지 나의 큰 포드 스콜피오 승용차(3000cc)로 3번을 날라서 겨우 남은 짐 이사를 마칠 지경이었는데 그중 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 침대는 꽤 사용할 만 했는데 마침 우리 집도 그 당시 3층짜리 새로 지은 집을 얻어 각 방마다 침대가 있었다. 여기의 부동산 규칙은 새 침대가 있어도 원래 주인이 설치해놓은 가구를 바꾸지 못하도록 되어있어서 곽 선생 집에서 가져다 놓은 침대는 그야말로 애물단지였다. 아무리 해도 이를 처분할 수 없어 그 지역의 일간지 신문인 익스프레스에코(Express echo)지 에다 광고를 내었다. 처분을 위해서 새것과 다름없는 침대를 10파운드에 광고를 내고 내자마자 한사람이 전화를 하고 바로 가지러왔는데 그가 고든(Gordon) 이었다. 그는 10 파운드를 주고 침대를 가지고 가면서 나에게 교회를 다니냐고 묻더니 자기가 성경공부를 지도하고 있는데 자기교회를 나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필요하면 나중에 성경책과 관련한 읽을거리를 갖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고든은 10권 이상의 오래된 성경공부에 필요한 논문들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아무튼 세이디의 편지는 우리가족에게 큰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이게 하였다. 레이첼은 제이슨의 부인 이었다 제이슨이 30대 중반임을 감안하며 레이첼은 외양으로는 20대 후반 아니 조금 더 먹었다면 이제 갓 서른 정도로 보이는 아주 전형적인 슬림형의 말수가 적고 수줍음을 잘 타며 오직 일에 충실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눈은 신에 대한 믿음에 충실한 순종적인 초록빛을 내며 입술은 진실과 영혼을 알리는 얇은 입술에 낭낭한 목소리를 머금고 있었으며 외출 시에도 늘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인터넷으로 투자가의 재무컨설팅을 하는 것이 직업이었다. 그의 집은 런던 쪽인 동쪽으로 난 M5 고속도로로 한 30분 달려서 지나는 타운튼(Taunton)이라는 읍 정도의 동네에 살았는데 교회와는 족히 40-50Km는 되는 거리를 매주 2번 정도 교회에 출석하기 위하여 운전하여 달려왔다. 세이디로부터 2003. 5월 제이슨의 죽음에 대한 연락을 받고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나는 그 교회의 주소도 가져오지 않았고 더구나 레이첼의 주소도 없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그해 7월에 영국을 방문할 예정으로 예정되어 있어 그때 교회를 방문하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쓰는 이메일을 열어보다가 Hotmail.com에 아직 제이슨의 이메일 주소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문득 제이슨에게 편지를 쓰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그에게 편지를 썼다.

 

“하늘에 있는 제이슨에게”

“당신이 뉴질랜드에서 사고로 이 땅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나 슬프다. 당신이 우리가족을 위하여 우리가 영국에 머물 때 그리고 박애교회에 다닐 때 베풀어준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하겠다. 네 소식을 우리가족에게 전하니 모두 충격을 받고 네 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는 교회에 혼자 남을 레이첼에 대하여 매우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 부디 레이첼이 아무 일 없기를 모두 기도하고 너도 하늘에서 돌보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먼저 갔지만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은총아래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나는 이 편지를 보내고 멋쩍게 생각하였다. 분명히 제이슨은 이것을 읽고 우리를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한달 뒤 “하늘에서 온 편지(From the Heaven)” 라는 제목으로 이메일 답장이 날아왔다. 나는 화들 짝 놀랐고 그 내용이 궁금하여 부랴부랴 이메일을 열어서 읽어보았다. 그 편지는 레이첼이 쓴 답장이었다. 친절하고도 차분하게 그녀는 침착한 어조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불의의 사고로 모두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는 말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심판의 날에 대비하여 우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요지였다.

 

친애하는 David(나는 영국에서 이 이름을 쓰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당신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당신에게 답장을 보내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해요. 당신의 이메일과 나를 걱정한데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나는 좋은 날과 때로는 나쁜 날들을 보내고 있으나 그건 지금 다른 일상사처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요. 만일 내가 나쁜 날들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보통 그것이 끝나버린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려고 해요. 제이슨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공경하며 살았어요. 그는 하느님이 하느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예수가 재림하시기를 바랐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같이 새 왕국에서 살기를 바랬어요. 하나님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며 성경을 통하여 확신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어요. 예수가 오실 날이 아주 임박해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전조로서 이것을 보여줍니다. 한국으로 돌아간 삶은 어떠세요? 영국이 그리우세요? 한국에 있는 박애교회의 분들과 연락해 보셨나요? Judy와 Garry 는 지금 다시 한국에 살고 있어요. 당신이 영국의 우리교회에 다니실 때 쥬디와 게리를 몇 번 만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이메일 주소는 judybawdon@hotmail.com과 garrybawdon@hotmail.com입니다. 관심이 있으면 연락해보세요. Brandon 과 Ju Young은 잘있는지요 ? Ju Young은 아직 Georgia와 연락을 하고 있는지요? 당신의 모든 가족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나지막 나팔이 불 때에 우리가 깨어있으되 우리는 눈 깜짝할 새에 모두 변할 수 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고 죽은 자가 모두 일어나고 우리는 모두 변할 것이다. 고린도전서15장(51&52)” (2003.7.16. 수요일)

 

그녀는 한국에 있는 교회 친구인 Garry를 소개하여 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Garry에게는 한번의 이메일만 보내주었을 뿐 아직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는 제이슨의 죽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아직 엑시터 시의 박애교회 멤버들이 그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후에 2003. 7. 28일 Garry에게 안부 차 이메일을 보내면서 제이슨의 죽음에 대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그런데 Garry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친애하는 이 선생님!”

“이메일을 보내 주어서 고맙습니다. 레이첼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 관하여 나에게 말해주었는데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제이슨의 죽음은 우리에게 비극적인 손실이며 엑시터시의 박애교회 성원들 모두 이에 대하여 모두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레이첼에게 지금 상황은 매우 힘드시리라 생각됩니다. 곧 만나 뵙기를 바라며 당신과 가족모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게리 보우돈(Garry Bawdon)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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