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3] 들판의 나라

2024. 10. 5. 17:29여행

3. 들판의 나라

고등학교를 다니던 1976년도에 나는 미국을 가겠다고 가방하나 달랑 챙겨들고 부산으로 떠났던 내 자신이 기억이 난다. 소년시절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번역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영어로 한국의 좋은 시와 소설들을 번역하여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오도록 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영어로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잘 표현해 주어야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이 세계 속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부산에 내려가서 항구에 정박한 화물선에 숨어들어 미국으로 밀항을 하려던 생각으로 부산에 왔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항구에서 큰 배까지는 몇 키로 미터나 되었고 어느 배가 미국으로 가는 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부산항에서 하염없이 바다에 정박한 배를 바라보고 서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 40이 넘어 우연한 기회에 영국 유학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20대에 항구에 서서 출항을 위하여 몇 킬로 미터 건너편 배를 보며 꿈을 키우면서 그 여정의 바다를 건너는데 근 20년이 걸린 셈이다. 내가 일찍 유학을 가서 젊어서 학위를 하고 나머지 인생을 그것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과 인생의 경험을 충분히 하고 중년의 나이에 유학을 하고 사는 삶과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았다. 원숙한 삶의 경험과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는 것이 지식인에게 중요하다면 나이 들어서 유학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교육과 삶의 경험이 시너지를 가지면서 한층 더 승화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젊어서 유학을 한다면 학문과 문화의 일방적 수용이 이루어지기 쉽고 문화적 충격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인다. 문화적 충격은 흔히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무기력, 분노 등으로 표현된다. 3년간의 일정으로 끝내겠다는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한국교포가 없고 영국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으며 많은 생활경험과 어학을 비롯한 전문지식을 향상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노력하자였다. 먼저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 자문을 받으니 ‘옷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가면 된다’ 였다.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 가는 동료선후배를 보면 컨테이너를 임대하여 배로 짐을 미리 부치는 것을 보아온 터라 언 뜻 수긍이 가지 않았으나 나중에 보니 그 분들의 말이 맞았다. 대부분 집을 렌트할 때 살림살이가 갖추어진 집을 얻으면 따로 살림살이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의 남서쪽 엑시터(Exeter)라고 불리는 데본(Devon) 주의 수도 (State Capital)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던 플리머스(Plymouth) 항구 보다 북동쪽으로 A38번 지방고속 국도를 따라 60마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런던을 제외한 영국의 주도(州都)는 그리 크지 않다. 물론 버밍햄 (Birmingham)이나 리즈(Leeds) 그리고 맨체스터(Menchester) 같은 제법 큰 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외에는 모두 규모가 작은 도시들이다. 엑시터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도청소재지급의 도시인데, 인구규모는 10만 정도였다. 통상적으로 엑시터로 가는 여행루트는 서울에서 출발하면 런던의 히드로(Heathrow) 공항에서 내려 펜잔스(Penzance) 라는 남서쪽 땅끝 도시로 가는 전국고속(National express) 버스를 타고 4시간 반 정도 M5 번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 그런데 엑시터에 국제공항이 있어서 항공루트를 택했다. 엑시터 공항은 엑시터 시내와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비행기를 갈아타므로 여러 도시를 경유했다. 서울에서 1시 반경에 출발한 대한항공을 타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내려 8시간 정도 대기하다가 새벽에 영국의 버밍햄(Birmingham)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British air)을 이용하여 버밍햄(Birminhham)에서 내려 입국수속 후 버밍햄(Birmingham)에서 엑시터(Exeter)로 출발하는 프랑스국적 비행기를 타고 엑시터 공항에 오전 10시경 도착할 수 있었다.

 

버밍햄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탑승용 버스를 타고 공항 활주로 끝에 가서 내리니 2차 대전 때 수송기나 폭격기로 썼을 법한 쌍발 프로펠러 여객기가 동그마니 서 있었다. 승객은 약 50명가량 되고 그야말로 오래된 시골 좌석버스 같은 번쩍거리는 비닐커버를 덮은 딱딱한 좌석에 승무원은 한 명으로 방송안내부터 음료수 서빙까지 다하고 있었고, 조종석의 열린 문으로 보니 버스운전석처럼 계기 판이 다 보이는 조종실이 빠끔히 보였다. 시내버스 차장 같은 여승무원이 조종사에게 담배 한 갑과 음료수를 조종실로 밀어 넣어주며 인사를 한다. 영락없이 아침 첫 운행을 나가는 우리나라 60년대 시골버스 풍경이다. 영국은 전통을 유지하기로 소문난 나라라고 들었고 그래서 비행기도 아직 이런 구식 비행기를 사용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나라 국내선에서 이런 비행기를 구경해 보지 못했다. 자리에 앉아 밖을 보고 있노라니 내 짐 가방이 화물차로 실려 와서 비행기 꼬리부분의 짐칸에 버스 짐칸에 짐을 싣듯이 우겨 쌓이고 있었다. 이 비행기가 과연 뜰 수 있는 것일까? 나의 영국생활에 대한 기대는 그 때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머지 다른 생활도 이런 식으로 전개될까 걱정이 되었다. 다른 탑승객들의 얼굴을 보니 정말 이 비행기가 한심하다는 표정 들 이었다.

탑승을 하여 좌석에 앉아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비행기 출발을 기다렸다. 한국의 대한항공이나 아시나나 국제선, 국내선은 그야말로 세계최고급 기종의 안락한 비행기였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보니 영국에는 1800년도에 만든 차도 굴러다니고 있고, 물론 레저로 즐기지만 도로에서는 말도 타고 다니고, 일부노선에는 증기기관차도 아직 수리하여 사용하고 있었다(물론 관광용이 태반이다).

공항 밖은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다. 가끔 비도 뿌렸다. 잠시 후에 한 쪽 날개에 붙은 프로펠러가 푸드득거리더니 돌기 시작했다. 그 소음은 머리가 아프도록 컸다. 잠시 후 다른 한쪽 날개의 프로펠러도 돌기 시작했다. 두 프로펠러의 소음은 내가 탄 비행기의 소음 중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뜨자 강력한 출력의 율동이 느껴졌다. 아침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버밍햄을 가기 위해 타고 온 브리티시 에어사의 소형제트기는 아주 작고 바람에 기체가 흔들흔들했는데 이 비행기는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동체자체가 좌우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는데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아주 안정적이었다. 프로펠러 엔진은 그 돌아가는 소리가 힘차고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고도는 제트기보다 현저히 낮았는데 영국의 중부지방의 들판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당시(2000년 4월 중순) 홍수가 났는지 물에 잠긴 들판과 길, 공장지대, 들판, 그리고 들판의 외딴 집, 정원, 방사형 도시구조와 외곽도로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들판 보다 우선 먼저 들판너머 하늘가로 아련히 겹쳐 보이는 것은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얼굴이었다. 부모부터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되신 어르신네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나는 내가 변해서 갈 수 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지금까지 살아온 타성에서 좀 변하여 새로 태어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것은 그만큼 나에 대하여 불만스러운 나의 자아 고백이기도 하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늘 생각해온 터이지만 무엇이 변할지 나도 모른다. 만족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 남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남서부지역의 산과 강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시골풍경(Bickleigh)>

 

 

하늘 위에서 자세히 본 영국의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은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도시의 경우에는 어느 곳이든지 잔디가 자라기에 충분히 공간이 넉넉했고 도시가운데는 커다란 나무가 부분적으로 녹지를 충분히 만들고 있었고, 이 나무들은 그야말로 한국으로 말하면 천연기념물로 칠만한 수백 년은 될 법한 나무들이 지천으로 들판 한가운데 자라고 있었다. 아무리 가도 산은 나오지 않고 들판만 보였다. 그 들판은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여기서 한국의 자연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지가 사람에게 주는 심리적, 혹은 문화적 영향을 생각했다. 한국은 산이 높고 물이 깊은 나라이며 우리에게 산은 올라야 할 도전의 대상이며 높은 기상과 이상을 만들고 선인(先人)들은 산(山)을 통하여 삶의 도(道)를 터득하고 살았지만, 영국인(英國人)은 들을 보며 삶을 생각하고 삶의 패턴(Pattern)이 정해졌으며 이상(理想)이 만들어 졌으리라. 산은 기를 쓰고 땀을 흘리고 분투해야 오를 수 있으나 들판은 슬슬 걸어가면 되므로 이들은 분명 기를 쓰는 일에는 서툴고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사실 영국인을 가만히 보면 모든 문제나 매사를 아주 쉽게 다루고 해결하고 생각한다. 영국의 문화나 삶의 원형은 물론 로마제국의 정복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들의 삶의 패턴은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과 인간에 기반한 자연주의적(Naturalistic) 패턴에 기반 한다고 보인다. 이 의미는 무리하지 않고 기를 쓰지 않는 문화, 그러나 몸을 던져 도전하고 사유하고 극복하는 것이 어우러진.... 이들의 일상 개인생활을 뜯어보면 자연적인 소산인 삶의 모방 작업, 즉 삶의 환경을 모방한 작은 인형 만들기와 같은 것이 아주 중요한 일상으로 눈에 들어온다. 축소지향적인 일본인과 같지는 않지만 ‘작은 것을 아름답게 보는 그들’은 일본인들처럼 인형, 주방도구, 심지어는 집 같은 건물의 미니어쳐(miniature) 공예가 발달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15세기부터 발달한 그런 공예는 아직도 개인들의 취미생활로 남아있는데 우선은 그런 정교한 놀이 기구들이 인간과 사회의 삶의 발전에 있어서 세상을 학습하는 원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소형 차(Tea) 도구, 프라이 팬, 그리고 바늘과 핀 같이 작은 수저와 포크, 이런 소도구들은 그것을 제작하는데 아주 공이 많이 들어야 하는 것인데, 나이든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노는 것을 데 즐긴다. 그런데, 그런 작은 정교한 공예품을 보면서 나는 영국이 우리가 생각했던 젠틀맨이라는 문화적 주제가 ‘축소 지향적인 일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윈저 성에 가면 메리 공주가 가지고 놀았다는 장난감 주택이 있다. 이것은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인데 참으로 정교했다. 이들의 문화와 과학은 순전히 이런 자연과 인간의 외형을 모방하면서 그것을 더욱 더 정교하게 만들면서 거기에 과학적인 필요성과 합리성이 가미되어 앞선 기술과 산업문명을 가져왔으나 무엇보다도 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운 사유와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이 들었다. 즉 너무 무리하지 않는 삶의 양식과 패턴에서 이들의 삶은 출발한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영국인은 축소 지향적인 것만은 아니다. 엄청나게 큰 것을 만드는 데도 재주가 있다. 런던아이(런던의 눈 :London Eye)라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테임즈 강변에 있는 이 기구는 에버랜드의 매직 랜드에 있는 우주 관람 차 같은 마치 둥그런 마차 바퀴 같은 것에 매달린 탈 것을 타고 공중을 한 바퀴 빙 도는 것인데, 그 탈 것의 크기 한대가 무려 버스 만한데, 15명 내외를 태우고 한 바퀴 돈다. 그런데 그런 큰 탈 것이 수십 개가 바퀴에 매달려 도는데 내가 타 본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탈 것이다. 여기서는 런던 시내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여하튼 그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1시간 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미리 연락한 한국인 교포의 영접을 받아 예약된 학교기숙사로 잘 들어갈 수 있었다. 영국은 육해공을 통하여 교통이 잘 발달 되어있었다. 내가 내린 엑시터 같은 지방 국제공항은 그야 말로 우리나라 규모의 작은 영국 내륙에 지천이었다. 간단한 예로 엑시터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1시간 거리인 플리머스(Plymouth)에도 국제공항이 있고, 다시 엑시터에서 런던 쪽으로 1시간 거리인 브리스톨(Bristol)에도 국제공항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는 영국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유럽대륙의 각 도시를 연결할 작은 공항이 많이 필요한 이유였다. 런던의 히드로(Heathrow)나 게이트 윅(Gatewick)은 주로 먼 대륙 간 여행객을 위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방의 큰 도시의 국제공항은 스페인, 독일, 지중해, 북유럽 등 중근거리에 위치한 도시와 연결노선을 제공하고 있었다. 지방공항의 많은 수요는 대부분 휴가를 즐기는 여행객을 위한 목적이 크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왜 버밍햄에서 엑시터 까지 타고 온 비행기가 프랑스 국적기이었나 하는 점이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국내 교통서비스 일지언정, 외국항공사가 경쟁을 통하여 국내에서 사업을 벌이는 경우다. 이것이 진정한 국제화가 아닐까? 국제화는 어찌 보면 나만 발전하기 위한 국수주의가 아니다. 한 국가주체가 국제화를 통하여 경쟁력을 가지려고 하는데 거기서 수단은 국내 국외에 차이를 두지 않고 효율과 저비용을 위하여 유럽국가 내 경제 주체 간 철저히 경계선을 철폐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EU 역내의 자본이동이나 사업의 자유화 정책이 충분히 뒷받침이 되었겠지만.

[내가 탔던 여객기와 비슷한 기종]

 

 

아무튼 그 프로펠러 비행기는 두고두고 화제 거리가 되었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전적이며 아주 좋은 여행수단이었으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그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려서 보니 엑시터 국제공항은 아주 작은 규모였다. 탑승수속과 입국에 필요한 모든 시스템은 다 갖추어져 있는데 아주 작은 그야말로 시골의 버스터미널 정도의 규모였다. 탑승 수속 시 5명이 줄을 서면 통로가 꽉 찰 정도의 좁은 공항이었다. 그런데 여객터미널로서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레스토랑, 커피숍, 환전소, 항공 소방대, 입국심사, 출국심사 등등...

 

[공항 라운지]

 

그 비행기는 매일 오전 10시경에 정기적으로 미들랜드 북쪽에서 날아와서 공항에 착륙했는데 하늘을 쳐다보면서 강력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