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30] 교육과 삶의 목표

2024. 10. 11. 09:57여행

30. 교육과 삶의 목표

 

어느 나라나 교육은 중대한 국가사업이고 영국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국가적 목표는 국가경쟁력이 이바지 할 수 있고 개인의 삶을 향유하기 위한 직업적 소양을 가지도록 하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의 교육목표는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부모에 의하여 정하여 진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하고 미리 앞당긴 단계의 학습 각종 예능 교육 등 학생이 원치 않아도 부모가 학원과 과외를 통하여 야단이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의 목표는 오로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입학해야 한다는 데 집중되어 있다. 입시 철이 되면 수능 시험장에서 가슴을 졸이고 학교 지원 후에는 목을 빼고 부모와 학생이 가슴을 졸이며 합격을 기다린다. 이것은 지나친 대학의 서열화, 취업, 일류 병, 학벌과 사회적 파벌 등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그런데 사실 나의 대학을 다니던 70-80년대를 회상하면 공부라고는 고작 교재의 3분지 1정도만 하고는 시험이다 축제다 그리고 중간고사다 기말고사다 하여 공부를 하다 말다 하다말다, 그러다가 강좌의 목적 달성도 못한 채 마치는 게 대부분인 그런 대학을, 졸업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무조건 입학을 잘 하면 되는 그런 대학을...

 

한국의 교육의 목표는 학부모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정해진 대학을 좋은 데 가야 한다는 그런 이상한 병 때문에 아이들이 망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도 비슷한 열병이 있기는 하지만 일부 층에 국한된 것 같은데 그들도 대부분은 한국과 비슷한 소망을 가지나 한국처럼 열병에 들 떠 있지는 않다.

 

우선 초등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의 특징은 지덕체의 3박자가 골고루 섞여있는 교육을 한다는 점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스포츠와 교양과 지식교육을 골고루 가르친다는 점이다. 교과목에 나열된 지식을 전달하는 데만 치중하지 않는다. 이런 교육은 공동체의 각종 지원과 유대를 같이한다. 예를 들어 각 지역에는 카운티에서 준비하는 체육관이 있고 아동들은 수업이나 수업 외에 여기서 몸을 단련시킨다. 초등학교의 경우 과외활동으로 하는 것을 보면, 스포츠로 승마, 수영, 크리켓, 넷트 볼, 축구, 럭비; 기악 다루기로 바이올린, 등 현악기와 클라리넷 등 다양한 관악기 그리고 노래 부르기 미술활동으로 디자인 등이다. 중․고등학교도 이와 유사한 것을 하면서 서핑, 커누 등이 더 추가되어 와일드한 자연 속에서 몸을 섞는 법을 가르친다.

 

학교의 학과성적을 매기는 방법으로 초등학교에서부터 A부터 F까지 성적이 매겨지고 각 학교의 성적통계는 전부 인터넷에 게시되어 학교별 비교가 되도록 정부에서 마련 해놓았다. 여기서는 주로 어느 학교의 어느 과목의 수준이 어느 수준이상이라는 정도로 제시를 해놓아 비교가 가능하도록 해놓고 공개적으로 경쟁을 유도한다. 대체로 학교 구는 사는 지역을 기준으로 정해지므로 사립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사는 인근의 학교를 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사립은 시험을 통하여 신입생을 유치하므로 보통 공립보다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립 고등학교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오래된 학교가 500년이 넘었는데 이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역사와 비슷하다. 이런 사립 문법학교(Gramma school: 최근에는 거의 정부보조를 받는 반 공립 학교화 됨)는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여 우수하게 교육을 시키고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로 진학을 많이 하여 사회적으로 저명인사가 된 사람을 많이 배출하므로 영국에서 있는 사람들은 자녀를 정평이 있는 사립에 보내려 노력한다. 그런데 반드시 사립을 나왔다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영국교육부의 정책이 각 대학 입학 시 공립졸업자를 일정비율 입학시키라는 입학 할당제를 실시하여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도 입학생을 뽑을 때 공립비율, 그리고 지역별 안배를 하는 경향이다. 내가 다니던 엑시터 대학의 선임 부총장인 윅스 교수의 부인이 어학연구소에서 유학 온 외국인 가정주부의 어학교육을 담당하면서 하던 말이 우리 두 딸은 둘 다 공립을 나왔는데 옥스퍼드에 진학하여 잘 적응하고 있다. 라고 한 것을 보면 영국에서도 옥스퍼드는 아직 좋은 대학이며 그리고 범인들도 공립학교에서 잘하면 옥스퍼드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영국의 사립 고등학교는 보통 보딩스쿨 (기숙사 딸린 학교) 인데 년 간 못 들어도 2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인이 여기를 다닌다면 가디언 비용까지 합하여 5천만원은 지출하여야 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영국의 초등학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은 20명 내외이다. 적어도 이런 환경이 되어야 내실 있는 교육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숫자를 더 줄이는 것이 현재 영국 교육의 목표이다. 이런 적은 수의 학생들도 수준별 교육이 잘 되는데 예를 들어 문학(literacy)의 경우 읽기, 쓰기를 5단계로 각각 다시 나눈다. 수학도 비슷한 단계로 나누어 수업시간에는 각기 흩어져서 그룹을 이루어 배운다. 그래서 어느 학생이 단계를 이수하였다고 판단되면 담임이 그룹을 옮겨준다. 우리아이가 초등3-4학년에 재학 시 집에서 좀 신경을 써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는데 영어도 A 그룹, 수학도 A 그룹이었다.

그 이유는 일기를 잘 쓰고 단어를 잘 암기하여 받아쓰기를 잘하였기 때문인데 작문은 좀 서툴러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쓰게 한 결과 문학과 수학에서 전부 A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가 수학인데 국제 경시대회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사람들이 수학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골상점의 전자화 되지 않은 곳에 가면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시 계산기 가 없으면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는데 정말 원시인 셈법 그 자체다. 그러고도 계산이 틀려 우리가 지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아이에게 구구단을 암송시켜 4학년에 다닐 때는 거의 공부할 게 없었다. 더하기 빼기는 한국아이들이 원래 잘 훈련을 받았고, 곱셈은 이미 초등 1,2학년 단계에서 암송을 시키므로 그 학교에서 우리아이만큼 계산을 빨리 해치우는 아이가 없었다. 수학은 늘 최상위 A 그룹에 속하였다. 그리고 말이 늘면서 주관식 문제 즉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계산하기, 기하학, 퍼센트 문제 등도 전부 사칙연산을 빨리 적용하는 문제이므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가끔 웃으면서 하는 말은 선생님이 답을 잘 못 계산하여 이를 지적하여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였다. 늘 선생님들도 사칙연산은 계산기를 들고 하는 식이었다. 수에 관한 한 동양아이들이 영국아이들 보다 매우 적응력이 높고 빨랐다. 즉 영어로 1234567을 읽어보면 얼마니 복잡한가? one million and two hondreds and thrity four thousands and five hundred and sixty seven 이다. 한국말로는 백이십삼만사천오백육십칠이다. 우선 읽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자리 수를 찾아 백만 자리인지 천 자리인지를 구분해야 하고, 1억을 표현하는데, 영어는 ten million 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가 1억이라고 하는 것과 비하여 얼마나 긴가? 수의 개념이 동양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빠른 독립사상으로 개념화되어 신속한 반면 서양의 논리에 있어서는 그 표현 방식이 복잡성을 가진다.

 

적은 수의 학생과 그룹화에 따라 각 학년별 담임들이 때로는 재배치되어 학생을 지도한다. 따라서 자연히 평준화된 그룹별 학습을 받게 되는데 한국 같은 경우 이것은 불가능하다. 30명-40명 정도의 학생을 가지고는 이런 분류를 하고 운영하기가 담임으로서는 너무 복잡하고 힘이 든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개정으로 수준별 교육과정이 제시된다고 하여도 공론에 그치는 경우는 이처럼 많은 학생을 데리고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다 처리를 하겠는가? 그것도 개개의 학생의 진척 도를 파악하는 것들을 포함해서..

 

한국은 따라서 담임이 획일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편하고 그 중에 모르는 학생은 영 처질 경우도 있고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또 수준별 학습이 안 되므로 교사는 중간정도의 수준에서 가르치면서 앞선 학생들에게는 불만이요, 뒤쳐진 학생은 계속 쳐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높다. 그리고 이러한 획일 풍토에서 학급의 정치적 권한은 담임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고 담임은 자의반 타의반에 의하여 학부모의 로비를 받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학급의 정치적 권한이 적절히 분산되어 버린다. 즉 그룹별, 수준별 학습은 다른 학급의 담임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므로 권한이 담임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한 학생의 학습에 따른 영향구조가 다면화되므로 담임이 어느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는 구조가 되므로 그 학급의 권한이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 적절히 분산되어버려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치마 바람이라는 것이 없다. 영국의 학부모는 그렇게 아이에 대하여 애착은 없는 것 같다. 보다 관심 있는 것은 건강한 아이, 예절바르고 교양 있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하는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우리아이가 말하길, 아빠, 우리 반 누구누구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팔고 계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데, 그런데 엄마 나는 술집 (펍) 에서 춤추는 댄서 되고 싶어.. 이 말에 아이 엄마는 기겁을 하였는데, 이런 식이다.

 

여기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선물을 한다. 이 선물을 하는 때가 있는데 여름 방학 전, 크리스마스 휴가 시에 카드와 선물교환을 한다. 이 선물은 대개 카드와 4-5 파운드 내외의 쵸코렛이나 적당한 선물을 한다. 이 선물을 선생님은 그냥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씩 아이들에게 소개를 하고, 보고 웃으며 하나의 여흥시간으로 마련하고 아이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 선물들을 하나씩 구경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투명한 학교(Transparent school)라고 보면 된다.

 

학부모가 수업을 참관하는 시간이 있다. 부모들은 학교의 초대에 의하여 학급 뒤에 앉아서 수업을 구경하는데 수업은 공정하게 진행한다. 어느 학생이 수업 중 딴 전을 피우면 가차 없이 벌을 세우는데 그 학생은 그룹에서 분리되어 혼자 저 구석의 책상에 앉아있게 한다. 벌로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냥 앉아서 반성을 하도록 한다. 한국 같으면 이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선생님이 우리아이만을 미워한다느니, 담임을 바꿔야 한다느니, 누구누구만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한다느니, 그런데 여기 부모는 우리처럼 마음이 찢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 아이를 보고 빙긋이 웃고 그 아이도 어른들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는다. 상벌을 주는데도 투명하고 공정하고 당연히 받아들인다.

 

최근의 신문에 난 이야기는 조금 살벌한데 우리 가 살던 시내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말 안 듣는 아이를 학교의 창고 같은 골방에 가두어 버린 일이 발생했다. 격리시킨 것이 너무 가혹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벌에 대하여 비판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처벌 방식에 대하여 비판을 하였다. 학교에 마련한 작은 골방에 가두면 공기가 탁하여 아이의 건강에 안 좋고, 마치 교도소 같은 인상을 주어 아이의 발달에 좋지 않다는 등.

통상적으로 벌을 주는 방법은 학교에서 뒤에서 문을 바라보고 서있게 한다든지, 복도에 나가서 한 시간 서있으라고 한다든지 하는 것이 보통인데 초등학교 3학년을 골방에 가두어 버린 일은 조금 가혹하다 싶었나보다. 이런 점에 비하여 우리는 매우 관대하다고 보인다.

 

[영국 초등학교 앞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