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70]. 포르튜갈로

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70]. 포르튜갈로

2024. 11. 18. 00:1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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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포르튜갈로

 

폴튜갈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떠들썩한 펍을 뒤로하며 차를 가지고 나와 폴튜갈로 향했다. 마드리드의 도로는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이 많고 쌍방향이라도 차를 돌리는 곳(유턴하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고속도로까지 가는 곳까지 안내하는데 50,000원 정도를 요구하여 그냥 두라고 하고 지도를 놓고 대강 방향을 잡아 나가니 고속도로에 연할 수 있었다. 폴튜갈 가는 길도 사막지대를 지나기 때문에 몹시 지루하고 더웠다. 스페인에서 포르튜갈 가는 길은 황무지였고 마치 황야같은 달의 한 표면 구역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리스본은 글자표기가 리스보아로 나타나고 있고 밤새 앞만 보고 달려서 그런지 주변의 경치는 못 보았지만 리스보아가 가까워짐에 따라 과수원도 보이고 집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초입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데 리스보아는 매우 긴 다리를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섬으로 된 곳 이었다. 엷은 슬픔이 리스보아에 오니 느껴졌다. 왜냐하면 폴튜갈에서 우리나라의 80년대 유행하던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80년대에 아파트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아파트 건설 회사들이 모델하우스를 지어놓고 사람들을 유치하여 설명회와 전시회를 할 때가 있었다. 그 때 한국사람들은 모델하우스 앞에 와서 출입문 안에 놓인 슬리퍼를 갈아 신고 검은 봉지에 신발을 넣어서 들고 모델하우스를 구경했다. 리스본 시내 외곽에서 보이는 전경은 딱 그 모습이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델하우스로 몰려갔는지 모델하우스 출입구 근처의 도로에는 개똥이 밟히고 또 밟혀서 말라 비틀어져서 도로에 아스팔트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리스본 중앙역]

 

한 때 세계를 호령하던 폴튜갈은 왠지 모르게 쇠퇴하였다가 그 동안 오랜 잠에서 깨어 다시 부흥을 위한 길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규칙과 원리에 매우 철저했고 상당히 마이크로적(미시적)이었다. 왜냐하면 버스를 타도 아이들 요금 받는 것, 할인료 등 작은 돈 계산에 철저하고, 도시인근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 모델하우스가 보이는 곳에 있는 번잡한 슬리퍼들, 포장안 된 도로 곳곳에 있는 말라버린 개똥들, 중앙역 앞에 앉아있는 얼굴에 커다란 붉은 혹이 있는 구걸하는 아저씨, 관광객에게 잘 보이려고 새로 장식하는 중앙역 앞의 고전적인 장식의 수리하는 모습은 뭔가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산동네를 운행하는 엘리베이터형 트램]

 

포르튜갈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항구의 건조물과 산자락에 자리 잡은 왕궁, 항구근처에서 파는 유명하다는 찰떡(이것은 우리나라 도너스와 모찌 중간 쯤 되는 것), 산동네로 가는 엘리베이터 타입의 전철 등이 명물이었다. 저녁을 중앙역 부근 레스토랑에서 꽁치구이를 빵과 같이 먹었는데 아이들은 작은 생 오징어 구이를 시켜 서로 나누어 먹었다. 생선요리가 매우 싸고 우리 식성에 맞아 아주 좋았다. 오후에 왕궁을 보러 가는 길에 한국인을 만났다. 그는 이름이 박종철이라는 분인데 나보다 15년 정도 젊은이였으며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분은 국졸 학력에 전기기술자로 일하던 중 IMF를 만나 직장에서 실직을 하여 실의에 빠져 고민을 하던 중에 삶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소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유럽 일주를 하러 왔다고 한다. 돈이 없어 잠은 역에서도 자고 아주 싼 숙소를 이용하면서, 이제 여행지는 폴튜갈과 영국만 남았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용기와 패기에 마음속으로 깊은 박수를 보내고 부디 여행을 마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겨 행복을 찾으시기 바란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는 여행 중 돈이 없어 밥을 굶기가 태반이었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에게 작은 버너를 하나 사서 라면 같은 것이라도 먹으며 여행을 하라고 말하며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는 여행하면서 겪은 신기한 경험을 이야기 해주었다. 자기는 영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국졸인데, 장기간 여행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지더라면서 여행에 대하여 강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래, 그겁니다. 자신감입니다. 사실 우리 나라 사람들 모두 여행을 다니는 목적은 자신감을 기르는데 한몫을 한다. 여행 경험을 통하여 기른 자신감은 일생을 간다.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이곳에서 폴튜갈어를 공부하기 위하여 하숙을 하는 외국어 대학교 한국인 학생 두 명을 왕궁근처에서 만났다. 리스본 시에는 켐프장이 큰 게 하나 있었는데 도로가 너무 복잡하여 이 캠프장을 찾다가 못 찾아 시내에서 운전 중인 마리(Mary)라는 아줌마에게 신세를 졌다. 그 아줌마도 잘 몰라서 가다가 서서 물어보고 하여 캠프장까지 왔는데 그 아줌마에게 나중에 편지로 사례를 하려고 주소를 적어달라고 하면서 볼펜까지 받았는데 그것을 돌려주지 못하고 모르고 작별을 하고 말았다. 고마운 아줌마였다. 이 켐프장은 싸고 넓었으며 시설이 괜찮았다.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수영장이 있고 이 시설은 특급 호텔급의 시설인데 아이들에게 하루정도 놀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여 하루 반나절은 수영장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소일하였다. 나는 폴튜갈하면 파티마의 예언(아이들에게 성모마리아가 나타나서 앞날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해준 기적)이 생각나서 거기를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종교적인 나의 열정과는 달리 집사람이 이미 일정을 정해가지고 왔다. 파티마의 예언은 어린 소년과 소녀가 갑자가 대낮에 성모마리아 상을 보고 세상일 세 가지를 예언했는데 두 가지는 교황청에 의하여 공개가 되고 나머지 한 가지는 공개가 안 되었다고 한다. 앞의 두 가지는 2차 대전과 같은 전쟁과 관련된 재앙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보도를 보니 공개가 되었다는데 그것은 효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암살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바오로 2세는 재임 중 암살 총격을 받아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아마도 그 예언 때문에 조심하려고 방탄차를 이용하고 했던 것 같다.

 

[파티마의 예언과 교황의 암살에 대한 예언에 대한 기도회 ] 

 

폴튜갈에서는 시내보다 외곽에 가보아야 볼거리가 있었다. 왕궁을 보기 위하여 수 십 마일 떨어진 외곽으로 전차를 타고 나가 다시 버스로 산꼭대기를 올라가 유명한 왕궁을 보고 거기서 내려오는 길에 산자락에 있는 야시장을 보았는데 여행의 묘미는 이런데 있는 것 같다. 흑색 옷에 검정 모자가 달린 회교도 같은 아줌마들이 진흙으로 이겨 만든 높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빵을 굽는데 아주 큰 만두 같은 음식이다. 만들어 파는 햄을 보니 우리나라 족발과 같아 이 포크 햄을 잔뜩 사서 과일과 함꼐 먹으니 일품이었다. 다음은 더 먼 곳에 있는 유럽의 땅 끝, 카보다 로카 라는 곶이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약 3-40마일 이 더 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도착하여 바다를 보고, 거기에 세워진 역사적인 탑을 보고 저 바다건너가 바로 영국인데 라며 아쉬워하며 나오다가 거기서 땅 끝 관람 증명서를 발부 하길래 아이들 이름으로 두 장을 사서 서명을 받아 들고 리스보아로 돌아왔다.

[유럽의 땅끝, 카보다 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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