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24] 엄격성과 자유의 배출구

2024. 10. 11. 09:05여행

24. 엄격성과 자유의 배출구

 

학교이야기를 좀 해야 겠다. 내가 교육분야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영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의 학교를 가보고 가만히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동과 교사의 거리가 우리보다 가깝다는 점이다. 아동과 교사의 거리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이다. 우선 학급당 아동수가 작으므로 교실공간이 작고 선생님과 코를 맞댈 정도의 거리에서 수업을 하는데, 한국의 대도시의 초등학교를 보면 교실이 영국의 학교보다 훨씬 크고 학생이 많으므로 복도와 계단이 매우 넓고 그러므로 시설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콘크리트와 벽돌과 매끄러운 돌을 이용하여 학교를 지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교실은 동선(動線)이 매우 크고 움직이는데 힘이 더 든다. 어린아이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물리적으로 교사와 아동의 거리가 가까우므로 교사가 아동을 보고 판단하고 지도하는데 훨씬 구체적이고 정확 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어느 날 우리아이가 한국에 귀국(2003년경)한 뒤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우리 반에 남학생 한 명이 숙제를 집에다 놓고 와서 선생님에게 혼났는데, ‘나는 숙제를 집에다 놓고 왔다’라는 글을 쓴 큰 종이를 실에 꿰어 목에 걸고 우리 학년을 다 돌아다니면서 창피를 당했어”

 

통상 영국의 교실은 이런 네거티브 전략보다는 포지티브전략으로 숙제를 관리한다. 숙제를 잘 해온 학생은 하우스포인트(House point)라는 점수를 주어서 교실의 게시판에 기록을 해준다. 숙제를 안 가져오면 이 점수를 못 받는다. 이 하우스 포인트가 누적되면 한 달이나 두 달 뒤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10점 단위로 상장을 주어 아이들을 보상한다. 아동의 수가 많으면 교사도 아동의 관리에 한계가 있으므로 숙제를 내일 검사하기에는 이미 시간상, 교육과정 스케줄 상 곤란하므로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선이 작고 교실의 크기가 작으므로 학교도 당연히 작다. 그래서 학교의 증축이 필요하면 나무막사 같은 교실을 만들어 교실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본다. 콘테이너 교실도 많다. 그 작은 교실에는 보통 수도시설이 연결되어 미술시간에 수채화를 그리고 화구나 쓰고 남은 물감을 씻어낼 수 있다. 학급에 필요한 교보재는 구석에 쌓아두는데 그래도 공간은 충분하다. 책걸상을 하나씩 쓰지 않고 공유하여 쓰는데 통상적으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때는 아이들이 선생님 발치아래 모여 앉는다. 그림에서 보는 전형적인 수업방식이다. 20여명이 카페트 위에 모여 앉아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선생님은 큰 소리를 내어 말을 할 필요가 없고 작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초등 4학년을 넘어가면 교실이 조금 더 커지고 동선이 약간 길어진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엄격성은 아직 영국의 학교에 존재한다. 물론 회초리는 없으나 엄격성은 남아있다. 혹시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영화를 보았다면 영국학교의 엄격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18세 이전까지의 학교는 공립의 틀 속에서(일부는 사립)남아있는데 초등학교 경우, 말을 안 듣는 학생은 수업시간에 복도에 내보내서 한 시간 동안 서 있게 하거나 빈 교실에 혼자 앉아있게 하여 단체와 격리를 시킨다. 심지어는 그 학생의 학부모가 참관하는 수업의 경우에도 그 학생이 말을 안 들으면 부모 앞에서 벌을 세운다. 내가 사는 지역의 두 공립 고등학교에서 한 여학생은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왔다고 하여 집으로 돌려보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여학생과 부모는 아이가 원래 스코트랜드 출신이라 머리가 빨간색이므로 약간 물들이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하여 항의를 했지만 학교에서는 요지부동이었다. 다른 하나의 고등학교는 학교에 검정 구두를 신고 다니라는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여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축구를 하다가 발목부상을 당하여 운동화를 신고 오겠다고 학교에 보고하고 흰 운동화를 신고 학교를 갔는데 학교에서는 무조건 검정 운동화를 신으라고 명령하고 돌려보냈다. 부모는 항의를 하고 지방신문에 이를 하소연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렇게 엄격하게 규칙을 운영하는데 때로는 이런 속박으로부터 배출구를 마련해준다. 그것은 학교별로 머피데이(Murphy day)라는 날을 만들어 놓고 자유복장을 하고 오는 날이 있는데 이날은 자선기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사복을 입고 오고 싶은 학생은 사복을 입고 오되, 돈을 50펜스이상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입고 오는 사복은 최대한 야하고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날은 아이들은 거의 파티 복에 쇠사슬을 차고 메니큐어에 루즈를 하고 머리를 온갖 색으로 물들이고 나타난다. 머리에 가발도 쓰고 오는데 할 수 있는 한 야한 복장으로 나타난다. 이날 교복을 입고 오거나 야하지 않게 오는 학생은 외로움을 느끼는 날이다. 이런 배출구를 통하여 아이들은 너무 구속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한다. 이 머피데이는 통상적으로 학교의 부족한 예산충당, 특수아동을 위한 기금모금을 위하여 실시된다. 영국의 회계연도는 3.1일부터 시작하므로 매년 2월말이면 봄방학 이전에 사친회(PTA)를 개최하고 학교의 결산서를 나누어준다. 지난 1년간의 아동의 성취수준, 학교의 목표달성도, 특별행사는 물론 지난 1년간의 예산과 지출명세를 보여주는데, 지출명세서에는 교사의 봉급, 학교관리비, 수리비, 등등과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하여 모금한 기금내역이 공개된다. 이 보고서는 모는 학부모에게 배달된다. 돈에 관한 한 유리알 같은 투명한 학교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