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55] 네덜란드

사랑이 숨쉬는 나라, 영국 [55] 네덜란드

2024. 10. 29. 09:12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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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네덜란드

 

네달란드는 벨기에와 붙어있어 그리 멀지는 않았다. 정오경 안트워프를 출발하여 오후 2시경에 네덜란드 함부르크에 도착하였는데 숙소를 찾아갔다가 다시 나오기에는 시간이 애매하여 차를 함부르크 시내 중앙 역 근처에 주차한 후 걸어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여기서는 시내가 좀 커서 트램 (땅위로 달리는 전철 같은 교통편) 종일 권을 끊어서 돌아다녔다. 몇 가지 중요한 시설이 역근처에 있었는데, 마담 터소 박물관(영국인인 마담 터소가 창시한 실물 같은 밀납 인형 박물관), 섹스박물관 같은 곳이 있었는데 가족이 보기에 적당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함부르크는 그야말로 국제도시중의 국제도시였다. 온갖 인종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유럽에서도 매우 자유로운 도시라서 그런지 유럽 국가중에서 매우 위험한 범죄소굴로 알려져 있다. 마약거래 중간지, 적나라한 섹스문화 등. 함부르크 역 주변은 창녀샵이 아직도 있었고 그 중간 중간에 섹스용품, 장난감 및 라이브 섹스쇼를 보여주는 작은 극장들이 버글버글 했다. 오다가다 주은 팜플렛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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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나라의 복지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말 코메디를 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느껴보았다. 좀 심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기관에서 이런 문제에 이렇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그만 큼 대중문화에서 이런 것을 개인의 복지나 인권차원에서도 이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음을 파악한 연후에 이런 방안이 나왔을 텐데, 그런데 이런 복지정책은 그 나라의 문화적 관습과 사람들의 보편적인 묵시적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아마도 국가적 혼란은 물론 그 정책 입안자는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아 자리보전이 여의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르크역 주변경관 이미지]

 

아차 이거 아이들과 이곳을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은 서양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져보며 구경하며 나를 놀라게 하였다. 개방적이었다. 한국사회도 언젠가는 저런 개방적인 날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곳을 벗어나 역 주변을 지나 외곽에 자리잡은 하이네켄 맥주공장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영국에서도 인기리에 팔리는 하이네켄은 유럽의 유명 켄 맥주다. 유명세만큼이나 크고 잘나가는 회사인 것 같았다. 영국의 펍에도 하이네켄 전용 맥주 꼭지가 있으니 말이다.

 

[함부르크 소재 하이네켄 맥주공장 전경 이미지]

 

 

유럽은 나라마다 화장실 인심이 고약한 곳과 후한 곳이 있었다. 고속도로는 휴게소가 있어서 별문제 없지만 일반도로에서는 무조건 햄버거 가게가 최고였다. 화장실 사용문제로 국가별 관광 편리성에 대한 등급을 속으로 매기기도 하였다. 문제는 시내를 돌아다닐 때인데 그런데 화장실은 대개 공공시설, 펍 (술집), 레스토랑, 햄버거가게 등을 이용하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물론 시내중앙에는 공중전화 박스처럼 세워놓은 화장실도 있지만 동전을 사용하여야 하므로 그 나라 동전이 적당한 게 없으면 그림의 떡이었다. 사실 함부르크에서는 무엇을 뚜렷하게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다른 인종들,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지저분한 골목길, 전철역에서 체포되는 밀수꾼 같은 사람, 너무 많은 레스토랑, 매음굴 같은 골목과 골목, 가도 가도 없는 화장실, 이겨야 원 가족 여행으로 너무 적당한 곳이 아니라는 느낌만 들었다. 그중에는 트렘역 근처에서 길바닥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말쑥한 한국인 젊은 이들을 무수히 만나게 되는데 어떤 여학생은 유럽 여행을 왔는데 차시간이 안 맞아서 중간 기착지로 며칠을 더 묵으면서 관광하는 학생들 왈, 여기서 원래 이틀인데, 유로스타 좌석이 없어서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해요. 더 볼게 없어서 이렇게 시내에 앉아서 그냥 구경하고 있어요.

 

[2000년초에도 많았던 한국의 유럽여행객 배낭족]

 

네덜란드의 풍차마을이 그중 가 볼만 하다는 정보가 있어서 어떻게 가는가를 놓고 의논하다가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기차편을 알아보기 위하여 역으로 가서 차 시간을 체크하는데 마침 한국인 학생들이 지금은 그 마을이 문을 닫았어요. 봄에 문을 여는데 지금은 철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라는 정보를 주는 바람에 기차역을 빠져나와 이제 날이 저무니 숙소를 찾기로 하였다. 그런데 골목에서 차를 빼고 캠핑장을 찾으려니 너무 막막하였다. 도시가 그물같아 좀체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와 자전거를 타고가는 부녀를 불러세웠다. 가까운 켐핑장을 물으니 자기네 가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따라 오면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여 자전거를 따라 갔다. 한참을 시내를 이리 돌고 저리돌고 교차로를 지나는 등 하여 가다가 서더니 한쪽 길을 가르키며 저리로 돌아서 주욱 가면 표지판을 볼 수 있으리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마침내 두 번째 캠핑 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켐핑장에 들어서서 여권을 맡기고 자리를 배정 받아 캠프를 쳤다. 배도 고프고 무척 피곤해서 켐프장의 샤워장을 찾으니 가족 욕실까지 잘 구비가 되어 있어서 켐프를 다치고 가족을 전부 불러 단체로 샤워실을 이용하였는데 실내가 몹시 넓고 온수가 철철 넘치게 나와서 효과적으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더욱이 여기는 취사를 할 수 있도록 개스 버너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김치와 생선통조림을 털어 넣고 김치 생선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더운밥을 지어서 먹을 수가 있었다. 김치가 며칠이 안되어 싱싱하려니 생각했는데 차의 짐속에서 푹 익어 버려서 벌써 시금시금하였으나 찌개를 끓여놓으니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김치 냄새가 많이 나리라 생각했는데 옆에서 요리하는 중년의 사나이가 야채복음을 하는데 넣은 카레소스 냄새가 더 강하여 김치냄새는 그 속에 묻혀버린 것 같았다. 아뭇든 저녁을 그렇게 먹고, 아침도 같은 찌개를 끓여 먹고 일찍 출발을 하기로 하였다. 행선지는 북유럽인데 지금부터는 북유럽을 가야하므로 덴마크까지는 그냥 직선으로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침에 일찍 짐을 꾸려 지도를 보니 우선 네덜란드를 빠져나가 독일로 들어서야 했다. 북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그대로 달리면 함부르크를 지나서 독일의 북쪽 끝에 도버해협만큼 좁은 해협이 나오는데 작은 항구에서 배를 이용하여 바다를 건너는 길이 덴마크로 연결된 것이 보였다. 그 길을 목적지로 삼았다. 그런데 함부르크 시를 빠져 나오면서 고속도로를 타다가 갈라지는 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을 차가 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도로를 탔다고 생각하고 갈라지는 도로를 탔는데 아무리 가도 고속도로는커녕 들판과 시골만 나오는 것이었다. 가도 가도 낮은 들판이다. 그리고 저 지평선 너머로 해안을 막은 댐 같은 둑이 지평선 너머에 높이 솟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가진 나라가 네덜란드임을 알수 있었다.

 

 

들판에는 꽃과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아주 한가롭고 평온한 시골이었다 중간 중간 빌리지가 구성이 되 있고 낮은 평원이 끝도 없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1시간 이상 달리다가 우리는 도저히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보이는 마을로 들어갔다. 두 명의 중년 신사를 발견하고 우리는 지도를 펴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독일 북부를 관통하는 독일의 아우토반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우리가 가는 길은 내륙 안쪽으로 가는 길이며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 처음에 나오는 4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돌아가는 지름길은 지금 오던 길을 가지 말고 이 동네를 관통하는 길을 곧장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분들의 덕분에 우리는 마을을 관통하는 길로 들어서서 가는 도중에 그동안 네덜란드에 와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전형적인 시골의 고전적으로 지어진 네덜란드 풍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풍차는 마을을 지나 한참을 가다 다시 나타난 빌리지의 초입에 서있었는데 웅장하게 그리고 구식으로 지어진 전형적인 네덜란들의 풍차를 보여주었다. 우리 4식구는 그것을 보는 순간 전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비록 길을 일고 오전내내 헤멨지만 이제야 진짜를 보게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길을 잃은 바람에 풍차며 시골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며 인심을 느껴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시골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함부르크의 지저분한 너무 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너무 넓고 평온한 들, 반듯하게 정리된 농장들은 함부르크에서의 우리가 본 너무 머리 아픈 국제도시의 개념을 여지없이 부수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튜립의 나라, 아름다운 농업국가인 네덜란드를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도시의 경우는 대체로 사람들이 영어는 다 통했으나 시골로 갈수록 영어는 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손짓 발짓을 다해야 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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